서울이랜드 골키퍼 이범수(25)에게서 편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올 시즌 직전 클래식 ‘1강’ 전북을 떠나 신생팀 서울이랜드로 이적한 그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든 게 강해졌고, 자신감을 느끼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2010년 전북에 입단한 뒤 5시즌을 몸담았으나 고작 3경기(7실점) 출전에 그쳤다. 물론 서울이랜드로 적을 옮겨서도 ‘선배’ 김영광의 백업이다. 그러나 표정부터 생각마저 변화가 생긴 건 스스로 실패한 선수로 규정짓고 살아간 전북에서의 삶과 180도 다르기 때문이다. ‘심리술의 대가’인 마틴 레니 감독은 이범수를 만났을 때 “전북에서 잘한 것을 생각해야지, (몇 경기 뛰지 않고서) 왜 못한 것을 생각하느냐”며 긍정적인 생각을 심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이범수는 최근 경기도 청평에 있는 클럽하우스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나 “레니 감독 얘기 듣고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어두운 생각만 하고 살았구나’하고 느낀 게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북에서는 ‘동료가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닌가’라는 불필요한 생각도 했다. 답답했다”며 “신생팀에 와서 진정으로 간절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더라. 실력 뿐 아니라 감독의 마음을 사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김영광을 거론하며 “화려한 슈퍼세이브도 존경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눈빛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특유의 눈매가 있는데, 그렇게 해야 수비를 제어할 수 있다. 골키퍼는 정말 동료를 다스리지 못하면 자격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축구의 기본으로 돌아가 제 역할에 충실했다. 최근 김영광이 징계로 빠진 상주, 부천전에 연달아 나서 골문을 지켰다. 비록 팀이 이기진 못했으나 이범수는 눈부신 선방으로 박수를 받았다. 특히 거센 빗줄기가 내린 가운데 치른 부천 원정에선 몸을 날리는 투혼으로 레니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항상 준비돼 있다는 마음이어서 편하게 경기했다. 좋은 선방을 보이면서 나를 잊고 있었던 분들에게 다시 존재를 느끼게 한 것 같다. 영광이 형이 다시 주전으로 나서겠으나 자신감 잃지 않고 또다시 찾아올 기회에 대비해야 한다.” 누구보다 긴장한 건 친형이자 국가대표 수문장인 이범영(부산)이다. “아무래도 늘 형과 비교가 된다. 오히려 형이 미안해하는데 내가 모처럼 경기를 뛰니까 더 긴장하더라. 이미지트레이닝 뿐 아니라 경기 전 듣는 노래 등 사소한 것까지 챙겨줬다”고 웃었다.
스스로 전북 시절 가장 후회가 되는 건 감독실에 찾아가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팀 실점이 늘었을 때가 있었다. 최강희 감독께 직접 찾아가서 ‘내게 기회 한 번 달라. 잘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고 문 앞까지 갔는데 더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 이랜드에 오니 선수에게 그런 의지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심적으로 편하지만,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경쟁을 유발하는 게 우리 팀 문화다.” 클래식에 승격해서 전북과 맞대결을 펼치는 그림도 그린단다. “실패한 전북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나서고 싶다. 나약한 모습보다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고 알리고 싶다”며 “기왕이면 최 감독께서 나를 다시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잘하고 싶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