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일레븐)
아래 사진은 지난 18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제주 유나이티드전이 끝난 후 모습이다. 그 경기에서 전북은 제주를 1-0으로 꺾으며 ‘22경기 연속 무패’ 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어깨를 맞대고 흥겹게 춤췄다. 서른세 번째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우리 프로축구 역사에 없었던 기록을 세웠기에 당연했다. 사진으로도 전북 선수들이 얼마나 큰 기쁨과 환희에 젖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살피면 한 선수의 표정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냥 다른 게 아니라 어둡다. 첫 번째 사진에서는 모두가 정면을 보고 있지만, 그 선수는 혼자 땅을 보고 있다. 두 번째 사진에서도 밝은 주위 동료와 달리 표정이 어둡게 굳어 있다. 그에게서 기쁨이나 환희 등은 찾아볼 수 없다. 홀로 어두운 표정으로 땅을 쳐다봤던 그 선수, 바로 에닝요다.
그렇다면 에닝요는 모두가 합심해 일군 새로운 역사의 탄생 앞에서 왜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주장 이동국부터 막내 이재성·이주용까지 모두 들뜰 수밖에 없었음에도 왜 홀로 단단히 굳은 표정을 보이며 시무룩했을까?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신기록 작성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다. 올 시즌 자신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그래서 모두가 웃을 때 웃지 않았다. 에닝요는 그런 사내다.
▲ 승부욕의 화신, 에닝요
신기록 작성 후에도 풀이 죽어 있던 에닝요를 보며 2011년 11월 5일이 떠올랐다. 당시 전북은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 알 사드(카타르)와 격돌했다. 경기는 전북 홈인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는데, 2006년에 이어 두 번째 ACL 정상 등극을 바라는 전북 팬들로 경기장은 만원이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전북은 웃지 못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알 사드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전북 선수들은 물론이고 경기장을 찾은 4만여 명의 팬들도 고개를 숙였다. 전주성은 패배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수만 명의 깊은 한숨으로 무거웠다. 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에닝요도 마찬가지였다. 에닝요는 엄청난 좌절감에 땅으로 떨어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알 사드전이 끝난 직후인 이튿날 새벽 3시, 에닝요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해 전북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40도가 넘는 엄청난 고열이 원인이었다. 에닝요는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나 에닝요 몸 어떤 곳에서도 의학적 병은 발견되지 않았다. 병원 측이 내린 결론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 현상. 에닝요는 전날 밤 ACL 결승전에서 당한 패배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것이다.
에닝요는 그만큼 이기고 싶은 열망이 강한 사내다. 에닝요가 고액 연봉이 보장된 중국 슈퍼리그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에닝요는 전북으로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좌우명은 언제 어디서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행복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축구할 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길 수 없는, 아니 패배를 분통해 하지 않는 동료와 뛰는 게 불행했다.”
에닝요의 이런 강한 승부욕을 알면 제주전이 끝난 후 신기록 작성이란 즐거움 앞에서도 그가 고개를 떨어트렸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으로 돌아온 에닝요는 과거 전주성을 위엄 있게 비행하던 ‘녹색 독수리’와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에닝요는 예리하게 비행하다 날카롭게 먹잇감을 낚아채던 과거의 그 모습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 슬럼프, 에닝요라 이겨 낸다
에닝요는 올 시즌 전북이 치른 K리그 클래식 전 경기에 출전했다. 모두 선발 출전은 아니었지만, 전 경기에 나섰다는 기록이 그의 높은 팀 내 비중을 대변한다. 그런데 성적이 신통치 않다. 여덟 경기를 소화한 에닝요의 공격 포인트는 1득점이 전부다. 전문 골잡이가 아니기에 득점 수가 적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도움이 하나도 없는 건 아쉽다. 분명 에닝요답지 않은 기록이다.
ACL까지 기록을 확대하면 조금 낫다. 에닝요는 ACL에서도 전북이 치른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다섯 경기에서 에닝요가 기록한 공격 포인트는 모두 세 개다. 2득점 1도움을 올렸다. 공격 포인트 숫자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다. 문제는 ACL에서 올린 공격 포인트 세 개가 모두 E조 최약체로 꼽히는 빈즈엉(베트남)을 상대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순도 면에서 높지 않은 공격 포인트다.
에닝요가 전북이 신기록을 달성할 당시 기뻐하지 않았던 건 자신의 경기력이 만족스럽지 않아서다. 경기에서 패했다는 사실 하나로 극심한 고열에 시달리고, 많은 연봉도 포기할 만큼 승리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내기에 부진한 스스로에게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제주전 이후에도 에닝요 표정이 계속 어두운 것 역시 만족할 만큼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아서다. 에닝요에겐 참으로 괴로운 요즘이다.
그러나 이 괴로움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자기반성을 할 줄 아는 선수라면 머잖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급 선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나태와 이기에 빠질 때다. 그러나 에닝요는 나태나 이기와는 거리가 멀다. 외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스스로에게 혹독해 주위 사람들을 걱정케 할 정도다. 따라서 에닝요는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슬럼프에서 곧 벗어날 것이다.
“최근 2년간 K리그가 ACL에서 무너지는 걸 봤다. 용납할 수 없다. 다시 K리그가 최고임을 입증하겠다.”
에닝요의 올 시즌 목표다. 에닝요는 지난 두 시즌 동안 K리그 팀들이 ACL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을 분통해 하며 전북 유니폼에 반드시 두 번째 ACL 별을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전북의 K리그 클래식 2연패 달성도 물론이다. 그의 다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 다짐의 주인공이 에닝요이기 때문이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전북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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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