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io Lefundes

News

파비오, 대행으로만 남기엔 아쉬운 인물
관리자 04/12/2013

화려한 제스처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리그팬들 사이에서 주목 받는 전북 파비오 감독대행

[사진 출처 - 네이버]

지난 3월 중순에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광저우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중, 광저우 선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지자 파울을 범한 전북 선수의 동작이 지나쳤다고 판단했는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해당 전북 선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강력한 언사를 날렸다. 이에 전북의 파비오 감독대행 역시 두 눈 부릅뜨고 즉각적으로 리피에게 삿대질 하며 자중할 것을 요구한다. 이후 약 1분 간 두 감독 사이에 서양인들 특유의 제스처를 곁들인 설전이 오갔고 이는 TV화면을 통해 우리 축구팬들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기 종료 후 서로 악수를 나누는 과정에서 또 한 차례 설전 비스무리 한 게 벌어진다. 물론 그 두 번째 설전은 첫 번째 것보다 훨씬 누그러진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

?하지만 압권은 단연 경기 종료 후의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선보인 파비오 대행의 거침없는 언변이었다. 간만에(실상은 중국축구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클럽축구 무대에서 제법 높은 우승 경쟁력을 갖춘 팀 겨우 하나 나왔다고 기고만장한 어느 중국기자가 광저우를 높이고 전북을 낮추는 뉘앙스의 무례한 질문을 했고, 파비오는 다음과 같은 답변으로 그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

?“작년에 홈에서 광저우에 1-5로 졌지만 원정에 가서 3-1로 우리가 이겼다. 어쨌든 우리는 그 대회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광저우는 어디까지 갔나? 8강에서 떨어지지 않았나? ACL 무대에서는 챔피언을 제외한 모든 팀들이 실패하는 거다. 전북은 2006년에 우승을 했고 2011년에 준우승을 했다. 하지만 광저우는 뭘 해봤나? 작년 ACL 우승팀은 울산현대다. 울산이 챔피언이고 작년 ACL에서 가장 강했다. 바로 그 울산을 지난 주말에 우리가 이겼다. 그 경기는 친선전이 아니었다. 당신의 논리라면 울산이 아닌 전북이 가장 강한 팀이 된다. 혹 이것과 관련해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나? 있다면 내 연락처를 알려줄 테니 따로 전화를 하라!”

?

?평소 전북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ACL 무대에서 모든 한국 클럽들의 선전을 염원하는 팬들에게 파비오는 이렇게 세 치 혀 놀림만으로 이 날 1-1 무승부의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는 통쾌함을 선사했고, 이 인터뷰 내용은 이후 며칠 간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그리고 그는 ACL 조별리그 3-4라운드로 펼쳐진 J리그 우라와 레즈와의 2연전 직후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짧지만 뼈 있는 두 마디로 K리그 팬들을 흐뭇하게 했다.

?

?“골대가 일본팀(우라와)를 많이 도와준 것 같다. 비록 먼저 실점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격하는 우리 선수들을 보며 일본에도 전북현대 팬들이 늘어날 것 같다!”

?

?이렇게 전북이 ACL에서 광저우, 우라와를 상대로 치른 경기들 뿐 아니라 현재까지 K리그 클래식 5경기를 치른 후 파비오 대행이 기자회견장에서 쏟아내는 언변을 접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파비오야말로 클래식과 챌린지를 막론하고 지금 K리그 무대에 꼭 필요한 감독 캐릭터 바로 그것 아닌가!’이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는 확실히 하면서 말과 행동이 당당하고 거칠 것 없다. 여기에 중간 중간 유머를 섞어가며 지나친 긴장을 완화시킬 줄 아는 화술도 겸비했다. 가장 중요한 건 상대 감독과 선수들 혹은 언론으로부터 가해질 수 있는 도전적인 언사에 언제든지 응전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

?흔히들 ‘스토리 텔링’이라 하는 것의 가장 기본은 ‘역사’이고 그 역사의 중심엔 ‘갈등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K리그가 상품화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갈등 구조를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집중된 이목을 현장으로 끌어들이거나 미디어로 확대-재생산시켜 어떻게든 ‘돈이 되는 아이템’이 되도록 가공하는 일이다. 지도자에 한정시켜 볼 때 올 시즌 K리그에서 지휘봉을 잡은 총 22명의 감독들 가운데 ‘설전’을 무기로 이 갈등 구조를 제대로 탄생-심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로는 단연 전북의 파비오 대행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하지만 그는 6월 이후 전북에 복귀할 것이 확실시 되는 최강희 현 A대표팀 감독의 ‘대행’으로 말 그대로 한시적인 사령탑에 불과한 신분이라는 게 안타깝다.

물론, 현재 수행하고 있는 전북현대의 감독직이 파비오 자신의 축구경력 중 가장 그럴듯한 첫 지도자 경험이기에 고작 9경기 결과를 놓고 당장 그를 명장의 반열에 올려놓거나 명장이 될 것처럼 성급하게 평가하는 건 위험하다. 무엇보다 이번 우라와와의 ACL 2경기를 통해 좋은 감독이 되려면 상대가 경기 초반 들고 나올 전형과 전술에 대한 정확한 예측력 같은 부분에서 좀 더 성장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기기도 했다. 비록 전반전의 실패를 후반의 발 빠른 대응책으로 단숨에 경기 흐름을 되돌려 놓는 부분은 긍정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

?어쨌든 신분적 제약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팀 안팎으로 끼치는 파비오란 인물의 긍정적인 영향은 모든 K리그 팀들이 크든 작든 관심을 가지고 주시할 필요는 있다고 나는 본다. 그리고 파비오 역시 이런 경험을 소중히 살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년 혹은 그 이후를 바라보고 향후 한국무대에서 자신의 지도자 경력을 화려하게 꽃피우는 꿈을 가지라 권유하고 싶다. 때문에 개인적으론 전북의 팬은 아니지만 파비오가 오는 6월 말 최강희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줄 때 전북은 K리그 클래식 최상위권, ACL 8강, FA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상태였으면 한다. 그래야 빠르면 스플릿 확정 후, 아니면 시즌 종료 후 새 사령탑 영입을 목표로 하는 리그 내 다른 팀들의 스카우트 목록에 파비오의 이름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

?

?마르첼로 리피가 누구던가? 클럽의 감독으로 그리고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세계축구를 제패해 본 명장 중의 명장이다. 경력만 놓고 따지면 정식 감독도 아닌 ‘그저 대행’인 파비오가 명함조차 들이밀지 못 할 정도의 까마득한 차이가 있다. 아니, 웬만한 아시아권의 지도자들이라 해도 리피의 호통에 그저 굽신거리거나 명장의 기세에 눌려 이렇다 할 대꾸조차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파비오는 전북과 광저우의 맞대결에서 전북 선수를 자극하는 리피를 향해 ‘감독 vs 감독’의 대등한 입장에서, “내 선수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단호한 제스처를 취했다.

?

?이렇게 당장 필드에서 싸우는 11명의 선수들은 물론 벤치에 앉아 있는 후보 선수들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감독으로서 해야 할 땐 반드시 해줘야 하는 기(氣)싸움을 대행의 신분임에도 당당히 행하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국내는 물론 아시아 클럽축구무대에서 그 누구와도 학연-지연으로 얽매여 있지 않기에 인터뷰 때마다 거침없이 나오는 그 말발을 보며 이 파비오란 사람은 확실히 우리 K리그가 더 오래 잡아둘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부디 이 느낌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