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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커피플] 인생역전…권경원의 ‘양화대교’
관리자 02/02/2016

아랍에미리트(UAE) 알 아흘리의 ‘멀티 수비수’ 권경원은 힘차게 인생역전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다. 최근 UAE 두바이에서 만난 그는 “언젠가 전북으로 컴백할 때 확연히 달라진 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다짐했다.두바이(UAE)|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아프셨던 어머니
연습경기 도중 올라로이우 감독 눈에 띄어
전북 무명선수에서 알 아흘리 멀티수비수로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 채 힘겹게 팔굽혀펴기를 하던 전주 영생고 축구부의 까까머리 소년이 선생님의 ‘하나, 둘’ 구령에 간절하게 외친다. “(하나) 엄마! (둘) 아빠!” 곁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동료들의 눈시울도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유난히 부모님과 가족을 사랑했던 이 소년은 대학생이 됐고, 2013년 그토록 꿈꾸던 ‘프로축구선수’ 타이틀을 달았다. ‘멀티 수비수’로 각광받는 권경원(24·알 아흘리)이다. 그는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북현대 유니폼을 입고 거친 프로세계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그러나 유독 두껍고 빈 틈 없는 전력을 구축한 전북에서 새파란 신인이 설 자리는 넓지 않았다. 신예들이 거의 자리를 잡지 못해 ‘신인의 무덤’으로 불린 전북은 프랜차이즈 예비스타 권경원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항상 우승을 다투는 팀인 만큼, 검증된 자원들에게 많은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파비오 피지컬코치가 감독대행을 맡고, 잠시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외도(?)를 떠났던 최강희 감독이 복귀하는 등 벤치가 다소 어수선했던 2013년 20경기에 출전해 1도움을 올리며 연착륙하는 듯했지만, 권경원은 이듬해 5경기 출장에 그쳤다. 물론 최 감독이 권경원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5시즌을 앞두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진행된 동계전지훈련에서 최 감독은 “올해는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약속으로 풀죽은 제자의 기를 살렸다.

그런데 운명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최 감독과 수원삼성에서 각각 코치, 선수(등록명 올리)로 인연을 맺은 코스민 올라로이우(루마니아) 감독이 이끄는 UAE 걸프리그의 명문 알 아흘리와 전북이 치른 연습경기에서 권경원이 펄펄 날았다. 변변한 대표 경력도 없는 동양선수에게 제대로 ‘꽂힌’ 올라로이우 감독은 당초 6개월 단기임대를 제안했다가 이를 전북이 거절하자, 거액의 이적료와 함께 장기계약(4년 6개월)을 제시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조건에 최 감독은 잠시 고민하다가 권경원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너 여기(UAE) 남아야겠다.”

전북 선수단의 귀국 전날 밤, 갑작스러운 통보에 어리둥절해하던 권경원은 진행상황을 전해 듣고는 운명을 직감했다. 알 아흘리 구단을 방문해 계약서에 사인한 뒤 지인과 차를 타고 임시숙소로 배정된 호텔로 돌아가는 길. 권경원은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듣다말고 갑자기 펑펑 눈물을 쏟았다. 래퍼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우리 집에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과 라면땅에 새벽녘 퇴근하신 아버지.(중략) 엄마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 항상 행복하자!(후략)’

택시를 모는 아빠, 자주 몸이 아팠던 엄마. 전부가 자신의 이야기였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의 가족은 서울 온수동의 작은 집에서 살았다. 실제로 피곤한 아빠는 내려오는 눈꺼풀과 싸우면서 양화대교 건너 퇴근길에 올랐다. 3개월 만에 집안 빚을 모두 갚았다는 이야기에 영생고∼동아대에 이어 전북에서 함께한 ‘절친 동기’ 이주용(24)이 눈물을 흘리며 누구보다 기뻐했다는 후문.

최근 UAE 두바이에서 만난 효자 권경원은 힘차게 성공시대를 열어젖히고 있었다. 과거 K리그 명 수비수로 이름을 떨친 올라로이우 감독의 권유로 중앙수비수로 보직을 바꾼 뒤에도 큰 혼란 없이 적응했다. UAE 정규리그는 물론,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맹위를 떨치며 알 아흘리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UAE에서 권경원은 또 다른 재능도 장착했다. 키 188cm의 건장한 체격에서 나오는 힘을 눈여겨본 올라로이우 감독은 팀 훈련 도중 공을 멀리 던지도록 했다. 1등. 스로인 스페셜리스트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수비라인을 책임지다 터치라인 밖으로 공이 나가면 부지런히 이리저리 뛰어가느라 정신없지만, 어지간한 프리킥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궤적의 스로인은 뜻하지 않은 득점 찬스를 만들곤 한다.

“전북은 아무 능력도 없는 나를 존재하게 했고, 만들어준 ‘제2의 고향’이다. 쟁쟁한 선배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존재감을 증명하기 쉽지 않았지만, 도전의 가치를 충분히 느꼈다. 언젠가 컴백할 때 내가 훨씬 발전했음을 보여주겠다. 자신 있다. 잊지 말고 기다려달라!”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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